전통적인 와인 발효 탱크에서는 효모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면 냄새나 맛으로 그걸 포착한다. 하지만 나파밸리의 팔마즈 와이너리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에 와인을 망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감지할 수 있다. ‘발효 지능 로직 컨트롤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세트장 같은 기계 덕분이다. 와인을 분자 단위로 감지하고 와인 메이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효모를 좌지우지하는 탱크 온도를 정밀하게 측정한다. 이 시스템의 기반은 잠수함 산업에 사용되는 농도 측정 기술이다. 농도계가 와인 탱크 속에서 1초에 10회 진동으로 수만 가지 데이터를 뽑아낸다. 액체의 밀도를 통해 당도와 알코올 정도를 알아내고 발효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파악한다. 이 시스템의 모든 정보는 팔마즈 발효 창고의 천장에 표시된다. 커브드 디스플레이 위에 차트와 그래프가 촘촘하게 박힌다. 위치 태그 기능도 있어 어떤 사람이 어떤 탱크 앞에 서 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와인 업계의 빅브라더가 나타난 셈이다. 물론 오로지 맛을 위한.
첨단 과학이 통제하는 치밀한 와인
BAR, 오해와 진실
바bar라는 단어 앞에서 머릿속이 좀 복잡해진다. 어젯밤 술을 마신 그곳은 바였을까, 아니었을까? 술을 섞어주는 사람은 모두 바텐더일까? 칵테일 한 잔에 이 가격이 괜찮은 걸까? 지금 우리나라 바를 둘러싼 휘청거리는 논제를 풀기 위한 대담을 열었다. 바의 문제점부터 바텐더의 양심까지 모두 도마에 올렸다.
90년대 플레어 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바Bar는 어떤 이미지일까? ‘싱글 몰트위스키’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바bar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형광색 술을 마시며 다트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바Bar는 어떤 음악을 트는 곳일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바Bar는 제각각 다른 그림을 하고 있다. 여종업원이 ‘양주’를 함께 마셔주는 곳을 바Bar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디펜던트 보틀러’라는 말이 유행가 제목처럼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이 지면에 기록하는, 바 업계 전문가 여섯 명이 나누는 대담은 이 모두를 독자로 상정하고 시작하려고 한다. 업계에만 통용되는 깊숙한 이야기부터 10여 년 전 바 업계를 둘러싼 케케묵은 사례까지, 어쩌면 좀 길어질 수 있는 대화를 모두 싣는다. 왜냐하면 그동안 바Bar는 주변으로 흩어진 개념들을 같은 실에 제대로 꿰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와인처럼 아주 새로운 주류가 새로운 문화와 함께 국내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류 문화와 새로 유입된 바 문화가 한데 뒤엉켜 굴러가고 있는 모양에 가까웠는데도 말이다. 조금씩 틀어진 기찻길 레일처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만 뻗어나가고 있었을 뿐 서로의 구획도, 서로의 다름도 정의된 적이 거의 없다. <GQ>도 바와 관련된 기사를 작성해왔지만 늘 최신 이슈를 소개하는 쪽이었다. 처음부터 밭을 새로 일군다는 마음으로 바 업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뒤집고 엎고 골라내고 헤집는 마음으로 대화했다. 그래야 흥미도 재미도 싹틀 테니까. 바 초보자와 바 전문가가 서로 다른 양극단에 떨어져 있을지언정, 적어도 같은 척도 위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이 기획의 시작이다. 지금 서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르 챔버’, ‘볼트 +82’, ‘커피바 K’, ‘스피크이지 몰타르’, ‘루팡’ 등은 ‘싱글 몰트위스키&칵테일 전문 바’다. 이름이 길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문 바는 싱글 몰트위스키와 칵테일을 양대 축으로 두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양주’를 파는 룸살롱이나 ‘모던 바’와 구별 짓기 위해 싱글 몰트위스키가 바의 중심으로 등장했고, 싱글 몰트위스키 전문 바가 많아지면서 칵테일이 다시 한 번 전문성과 차별화의 도구로 기능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부터 ‘싱글 몰트위스키&칵테일 전문 바’가 급증하기 시작해 지금은 대략 180개(싱글 몰트위스키 20종 이상 판매 기준, 한국칵테일위크 집계)로 늘었다. 2013년부터는 성장 폭이 2배씩 뛰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청담동에 5개 바가 새로 문을 열고, 연남동과 한남동의 바 상권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딱 좋을 때다. 손님들도 바의 문턱을 넘어 술 자체를 유흥으로 즐기기 좋고, 바도 기능적, 직업적 전문성을 다지기에 적절한 시기다. 요동치는 물결에 몸을 실어온 여섯 명의 바 전문가가 더 단단한 바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담 참가자






바bar라고 이름 붙은 술집 중엔 ‘모던 바’, ‘토킹 바’도 많다. 실제로 업장 수도 어마어마하고. 그간 <GQ>가 다뤄온 ‘싱글 몰트위스키&칵테일 전문 바’와는 어떤 기준으로 구별하면 좋을까?
유용석 이전 시대의 바 형태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해방 이후, 주로 미군부대 주변에 스탠드 바가 생겼다. 이후 밴드와 여종업원이 더해지면서 유흥주점으로 발전했다. 90년대 이후 패밀리 레스토랑의 영향으로 발전한 웨스턴 바, 플레어 바도 있다. 웨스턴과 플레어는 칵테일 위주의 바다. 그리고 클래식 바는 한동안 호텔 안에서만 존재했다. 이후 당시 유행하던 인테리어 트렌드를 따라 ‘모던 바’가 등장했는데 이는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양주’ 위주의 바였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칵테일 바와 위스키 바가 분리되어 발전했다.
김봉하 모던 바와 토킹 바는 다른 개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던 바는 웨스턴 바 스타일과 구분하기 위해 인테리어가 ‘모던’하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곳이다. 그게 퇴색하면서 지금은 여종업원이 나오는 토킹 바와 비슷해져 혼란이 생긴 듯하다. 그런데 지금와서 바의 형태를 꼭 구분 지어야 할까? 음식점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굳이 구분 짓지 않아도 유행에 따라 저절로 추려질 것이라고 본다.
안성진 다른 선택지를 몰라 모던 바, 토킹 바에 가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 이전에는 유흥업소에 ‘바’라는 간판이 많이 붙어 있었다. 같은 바bar라도 서로 어떻게 다른지 선을 짚어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유용석 물론 피아노를 틀면 피아노바이고, 재즈를 틀면 재즈 바다. 이미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이라도 바bar라는 단어를 놓고 서로의 영역을 쟁취하려는 싸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에게 분별을 주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성민 실제로 바텐더로 일하면서 자주 접하는 어려움 중 하나다. 남자 손님들이 “왜 여기엔 여자 바텐더들이 없어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우리는 ‘칵테일 바’라고 설명한다.
‘모던 바’에서도 간단하게나마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칵테일 바’라는 말도 충분한 단어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싱글 몰트위스키& 칵테일 전문 바’의 경우 ‘바’라는 단어가 아닌 새로운 용어를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걸까? 새로운 단어가 새 문화를 견인할 수도 있는 거니까.
유재광 그러기는 힘들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의해 들어온 문화이기도 하고. 외국과 ‘바’ 문화를 공유하는데 우리만 다른 단어를 쓰기도 힘들다.
유용석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단어의 차별이 있는 듯하다. 이자카야도 있고 캬바쿠라도 있고.
유재광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주막, 포차 같은 구분이 엄연히 있긴 하다.
유용석 하지만 일본보다 더 혼란스럽다. 소주 바나 와인 바처럼, 술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때 ‘바’라는 용어를 마구 갖다 붙인 경향도 있고. 그런데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당시 아무도 구분의 잣대를 들지 않았다.
용어로 구분이 힘들다면, 전문 바텐더의 존재 여부로 구분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전문 바텐더는 어떤 사람일까?
유재광 “바텐더가 무슨 뜻인가?”가 아니라 “요즘 시대에 어떤 사람을 바텐더라고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텐더는 바bar를 텐더(tender, 부드럽게)하게 하는 사람인데, 이 역할이라면 ‘토킹 바’의 바텐더들이 훨씬 더 잘한다. 그런 의미를 넘어서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한별 바텐더가 세일즈에 집중하는지, 술과 손님을 연결하는 데 집중하는지에서 차이가 난다. 농담 따먹기로 손님을 충족시키고 그들의 지갑을 여는 데 집중하는 바텐더와, 술에 대한 지식을 매개로 손님에 집중하는 바텐더는 엄연히 다르다.
유용석 바텐더의 인성이나 서비스는 객관화할 지표가 없다. 그건 기본 소양이다. 바텐더라면 당연히 술을 만드는 역량이 중요하다. 조주기능사 같은 자격증이나 그에 준하는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김봉하 조금 다른 이야기로 빠지는 것 같지만, 조주기능사는 사실 모순이 많은 제도다. 법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고등학생들이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있다든지, 바에서 근무하는 바텐더인데 조주기능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말이다. 이 자격증 자체가 많이 대중화됐고, 요즘은 일반인들도 많이 딴다. 전문 바텐더를 구분할 때, 바텐더가 술을 많이 알고 잘 만드느냐는 중요하지만, 이 기준마저도 사실 되게 애매하고 범위가 넓다.
공신력 있는 대회, 이를테면 디아지오에서 주최하는 ‘월드클래스’와 같은 바텐더 대회가 전문 바텐더를 규정하는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을까?
유용석 아니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자동차 운전면허 따는 것과 카레이스에서 우승하는 것이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유재광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기관에서 인증을 받았는지,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바 업계 사람들이, 수입사 직원들이, 바텐더 선배들이 인정해주는 사람이 전문 바텐더라고 볼 수도 있다.
김봉하 일본에서는 실제로 그런 식으로 바텐더의 구도가 재편되기도 한다. 두 개의 ‘라인’이 있는데 자기 라인이 아니면 인정을 안 해주는 풍토도 있다.
이한별 해외의 바 신Scene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전문 바텐더에게 어디 출신인지, 어떤 바에서 일을 했는지가 매우 중요해졌다. 요즘 바텐더들이 대회보다는 이름 있는 바장에서 인정받기를 더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유재광 그 바를 인정해주는 건 소비자다.
김봉하 다 같은 이야기다. 소비자가 인정하면 비즈니스가 좋아지고, 그러면 그 바에 대한 주류회사의 신뢰가 쌓일 거고, 그렇게 유명해진 바에 몸 담은 사람들이 빨리 성장할 확률이 높고, 바 밖에서의 다른 일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 자연스럽게 바텐더의 역량이 향상 된다.
유용석 이 지점에서 바의 ‘트렌드’가 형성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바, 한 명의 바텐더가 3천 명의 제자를 만들어낸다고 치자. 일본은 바텐더가 30년 동안 일을 하니까 이게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그 바의 스타일이 정형화되고, 트렌드가 되고, 그렇게 트래디션(전통)이 된다. 더 나아가면 유파를 형성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바도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그 바 출신 바텐더가 수십 명 나올 수도 있겠지.
김봉하 바텐더를 중심으로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믹솔로지Mixology’도 일종의 유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시 ‘믹솔로지’의 영향으로 모히토 칵테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청담동이나 홍대 술집에 가면 메뉴에 모히토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모히토 한잔의 맛으로 얼마나 트렌디한 술집인지 판가름했던 기억이 난다.
김봉하 바텐더든 믹솔로지스트Mixologist든 하는 일은 똑같다. 그 당시 소비자들에게 칵테일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선 좀 더 감성적인 코드와 카테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믹솔로지라는 새로운 단어를 전면으로 가져왔다.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보자는 생각도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선한 과일과 허브를 머들링해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모히토는 믹솔로지 칵테고리에 들어가는 칵테일은 아니었지만, 바에서 민트가 들어간 신선한 칵테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되면서 모히토가 인기를 끌었다. 손님들이 “풀 들어간 칵테일 주세요”라고 말한 기억도 난다.
유용석 김봉하 바텐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스탠드 바가 완전히 유흥업소화됐고, 92년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통해 들어와 성행했던 플레어 바는 2000년대 중반쯤 새로운 이슈가 없어 정체되고 있었다. 이때 믹솔로지는 칵테일 분야에서 굉장히 신선한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게 해외 트렌드와도 잘 맞았고. 그리고 그 즈음 싱글 몰트위스키 전문 바가 조금씩 태동을 준비했다.
2013년에 시계를 맞추고 그 당시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했으면 좋겠다. 바 업계에선 2013년이 변환점이다. 한남동에 있는 세 군데의 바, ‘스피크이지 몰타르’, ‘볼트+82’, ‘커피바 K’ 가 동시에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화의 물꼬를 튼 시점이니까. 이 가운데 한 곳을 처음 가보고 본격적으로 바 문화를 즐기기 시작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시 잡지 매체나 일간지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칵테일 전문 바(이하 ‘바’로 표기) 열풍에 대해서 제법 보도했는데, 당시 열풍의 원인을 여성 소비자들이 움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좀 표피적인 분석인데, 업계에서는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유용석 싱글 몰트위스키와 클래식 칵테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한 바가 ‘커피바 K’다. 그때 ‘커피바 K’ 손님의 반 이상이 여자였던 건 맞다. 바는 술을 마구 퍼마시는 공간이 아니라서, 대중들에게 ‘분위기 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네이버에서 ‘바’ 관련 검색어의 순위를 내면 ‘분위기 좋은 바’가 1위다. 그래서 뜬다고 하는 바에는 여자 손님이 많고 여자 손님이 많으면 뜬다. 이렇게 뜬 바가 인기를 지속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지속성 면에선 여자 손님이 썩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김봉하 세 군데 바의 영향력이 컸다고 본다. 같은 동네에 있었지만 ‘스피크이지 몰타르’, ‘볼트+82’, ‘커피바 K’ 모두 스타일이 각기 다르다.
유용석 2010년대 초반까지 싱글 몰트위스키에 대한 이슈가 계속 커졌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새로운 장이 열리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다 한남동에서 터지니까 손님들이 그쪽으로 몰려간 것으로 본다. 이 현상을 두고 나는 대기 수요가 터졌다는 표현을 쓴다. 소비자들이 궁금해했던 세계를 한 군데에서 다양한 형태로 재미있게 풀어놨다는 점이 주효했다. ‘스피크이지 몰타르’는 손님의 출입을 제한하는 스피크이지(미국 금주법 시대에 숨겨진 바의 콘셉트를 차용한 형식) 형태로 재미를 줬고, ‘볼트+82’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2층으로 쫙 쌓아올려 위스키 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만든 거다.
박성민 덧붙여, 커버차지(바 이용 시 음료 가격과 상관없이 자리에 붙는 추가 금액)를 낼 수 있는 손님들, 200종이 넘는 위스키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손님들이 그 동네에 존재했다. 주머니 사정이랄지, 문화적인 성숙이랄지, 준비가 된 손님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재광 그런데 당시 한남동 바 성공은 우리가 앞서 말한 전문 바텐더의 성공과는 좀 다른 이야기 같다. 당시 한남동 인근에 투자하던 거대 자본의 뒷받침을 무시할 수 없다. 버틸 수 있었던 자금력이 성공의 큰 요인 아니었을까?
유용석 돈이 있어도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진 곳을 숱하게 보지 않았나? 재력만으로는 업계를 뒤흔들 수 없다. 자본 이상의 요인이 있었기에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본다. 한남동 바의 성공으로 업계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에 집중해보면 알 수 있다.
안성진 두 사람의 의견을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2013년까지는 바가 성공하는 데 오너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2014년을 넘어서면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오너 바텐더의 역량과 영향이 커지고 있다. 오너 바텐더의 재량과 기량이 전체 바텐더에게까지 미치고 있고, 그게 업계를 바꾸는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당시는 정말 ‘붐’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한남동 바가 이슈가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기회를 바 업계가 잘 받아들였는지도 궁금하다.
김봉하 성공 사례 분석을 많이 했다. 바텐더들이 어떻게 하면 고급 문화를 향유하는 소비자를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해야 하나? 한남동 붐 이후 청담동에 있는 바들도 바뀌기 시작했고, 커버차지를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어마어마한 길이의 위스키 리스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커피바 K’ 청담을 제외하곤 위스키 라인업이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았고, 보드카 2~3종으로도 충분히 장사를 했는데, 2013년 이후 바들이 두툼한 술 리스트를 무기처럼 갖추기 시작했다.
유용석 그 이후 바의 캐릭터, 바의 콘텐츠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오너 바텐더가 그래서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루팡’이나 ‘르 챔버’ 같은 바들이 앞서나갔다고 생각한다.
이한별 그걸 ‘바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고 있다. ‘르 챔버’는 바텐더 팀 시스템과 바 프로그램이 잘 짜여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하게, 통일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갈수록 이런 바 프로그램이 중요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진짜 경쟁이다. 올 상반기만 해도 청담동에 굵직한 바가 다섯 개나 더 생긴다. 한남동만 해도 스무 개가 넘는다. 바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차별화가 생존으로 연결된다. 과연 우리나라의 바가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마다 개성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만의 색깔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용석 깊이 보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텐더의 캐릭터도 많이 다르고, 실제로 거기서 추구하는 칵테일 방향이 다 다르다. 그런데 바를 겉핥기 식으로 보면 비슷해 보인다. 한 군데 바를 서너 번씩 가고, 또 다른 바를 서너 번 더 가면 각각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성민 솔직히 겉만 보면 경쟁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테리어나 모양새가 조금 다른 것뿐, 실질적인 변별력이 없다는 세간의 의견에도 동의한다. 사실 사진으로 찍어보면 인테리어마저도 비슷하다. 나오는 노래도 좀 비슷하고. 하지만 ‘루팡’, ‘르 챔버’, ‘볼트+82’에 앉아서, 바텐더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제서야 다른 점이 보인다. 이건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바텐더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차별점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볼트+82’의 바텐더는 좀 점잖고 ‘르 챔버’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오센틱 바(아주 정갈하고 클래식한, 일본식에 가까운 바)나 스피크이지 스타일처럼 바의 콘셉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바텐더의 캐릭터가 다양성 측면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
박성민 그렇다. 사실 바 업계의 미래가 아주 밝지 만은 않다. 좋은 바텐더가 많이 나온다면, 그 바텐더들이 자신의 영역을 더 깊게 파고 든다면 충분히 다양한 바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한별 스피크이지 스타일을 우르르 따라 하는 식보다는 바 프로그램을 차별화하는 게 중요하다. 포시즌스 호텔 ‘찰스 H’가 찰스 H. 베이커의 기록을 해석하고 바 전체가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보다 바가 더 세분화된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식으로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엔 불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LA를 중심으로 퍼진 티키바 (폴리네이산 문화와 카리브 해의 영향을 받아 럼 위주의 이국적인 칵테일에 집중하는 바)나 뉴욕에서 퍼져나간 아가베바(데킬라, 메즈칼 같은 아가베 스리핏을 위주로 하는 바)처럼 한 가지 분류에 집중하는 형태의 다양한 바의 예시가 될 수 있다.
김봉하 그런 시도들이 통하려면 소비자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4~5년 전에 싱가폴을 갔을 때만 해도 “얘네 별거 없네” 였다. 근데 몇 년 뒤 깜짝 놀랐다. 땅덩어리가 작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의 관심과 트렌드 파급력이 엄청났다. 이런 환경에서는 럼 바나 진 바 같은 형태도 생길 수 있고, 바의 카테고리가 세분화될 수도 있다.
안성진 그 변화를 위해선 바텐더들이 나서서 소비자를 리드하고 가이드해야 한다.
이한별 맞다. 소비자가 요구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단 바가 전달자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안성진 트렌디한 정보를 다루는 잡지와 같은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바텐더의 역할이 가장 필요하다. 지금의 연남동 바 문화처럼 바텐더들이 모여서 연대하고 서로 고민하는 식도 좋다. 이렇게 바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수요가 커지지 않은 채 바만 많아질지도 모른다.
김봉하 바카디에 소속돼 지난 6년간 거의 소비자 칵테일 클래스를 1천 번 넘게 진행했다. 피드백을 받아보면 모두가 칵테일에 관심이 많고 칵테일을 맛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바에 들어서기까지 장벽이 많다. 소비자 시각에서 즐길 수 있는 바의 콘텐츠들이 부족한 것 아닐까?
싱글 몰트위스키와 칵테일을 모두 다루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바보다는 칵테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바가 소비자에게 다가가기가 좀 더 쉽지 않을까?
안성진 일반 칵테일 바는 확실히 문턱이 낮다. ‘무제한 칵테일 바’ 같은 곳도 많다. 물론 칵테일의 품질 차이는 있겠지만, 바 문화를 접해본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유용석 칵테일에만 집중하는 전문 바가 나온다면, 아마 수익성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칵테일은 대량으로 팔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고, 그렇게 되면 바텐더의 영향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지금 전문 바에서 싱글 몰트위스키 판매를 놓지 않는 것도 바로 이 수익 구조 때문이다.
박성민 ‘르 챔버’의 경우에도 현재 전체 매출의 약 70퍼센트를 싱글 몰트위스키가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한 25퍼센트 정도가 칵테일, 또 나머지 5퍼센트가 음식이다. 그런데 오히려 팔리는 잔 수를 세어보면 칵테일이 훨씬 많다. 언제나 칵테일 손님이 훨씬 더 많았는데, 수익은 반대다.
싱글 몰트위스키의 판매에 의존하면 바텐더는 갈증이 있지 않을까? 바나 바텐더가 개성과 존재감을 내세우기도 어렵지 않나?
유용석 그건 싱글 몰트위스키의 세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싱글 몰트위스키로도 충분히 업장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일본의 바를 예로 들면, 그곳도 우리처럼 글렌리벳 위스키가 비슷한 종류로 갖춰져 있다. 그런데 생산년도가 20년대, 50년대, 60년대로 다양하다. 똑같은 12년인데 올드 몰트 12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매출에만 신경 써, 빠진 품목만 채우는 식으로 싱글 몰트위스키를 구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칵테일만으로는 바 운영이 정말 힘들까? 칵테일에 집중한다면 앞서 말한 다양한 형태의 바를 만들기도 용이할 것 같다.
이한별 해외에선 ‘칵테일 긱geek’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갈수록 칵테일과 그 맛에 집중하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니즈가 없진 않은데….
유용석 맞다. 우리나라에서도 칵테일 ‘덕후’가 등장할 때가 됐다. 칵테일은 이미 대중화를 거친 음료다. 본격적인 시대가 열린다면 지금이다.
칵테일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보다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더 공들여 만들고, 역사와 스토리를 탐구하는 ‘크래프트 칵테일’이 해외에서 부상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도 ‘크래프트 칵테일’이 화두였고. 이를 놓고 바텐더들 사이에서도, 손님들 사이에서도 혼선 아닌 혼선이 있는 것 같은데?
유용석 최근 어떤 손님이 바에 와서 “이 바는 크래프트 파예요? 클래식 파예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양립되는 구조가 아닌데,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이한별 크래프트 칵테일이라는 말은 일종의 ‘운동’이다. 개념이고 방법론이고 철학이다. 그 개념을 기반으로 글라스, 칠링, 얼음, 좋은 품질의 스피릿, 신선한 재료, 조주법, 칵테일의 배경 등이 제대로 수반되는 것을 뜻한다. 크래프트 칵테일이라는 칵테일 종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크래프트 칵테일은 무조건 클래식 칵테일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 자체가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라 클래식 칵테일을 짚어보게 되는 것뿐이다. 클래식 칵테일을 마스터하는 것 자체가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니까.
박성민 크래프트 칵테일이 부상하면서 함께 언급되는 라모스 진피즈나 세즈락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뉴올리언스 지역 칵테일 아닌가? 그냥 클래식 칵테일이다. 그리고 크래프트 칵테일의 방식 자체는 이미 일정 수준의 바텐더들은 다 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바텐더가 칵테일을 잘 만드는 건 당연하고, 손님들은 칵테일이라는 결과물을 받아보는 건데, 그렇다면 세즈락은 분류하자면 클래식 칵테일인 거다. 크래프트 칵테일이 아니라.
유재광 동의한다. 그게 크래프트 칵테일 정신으로 만든 술이라는 걸 손님들이 알 필요가 있을까? 그 정신을 손님에게 전달하면서부터 혼동이 시작된 것 같다. 크래프트 칵테일에 꽂혀 있는 바텐더가 칵테일을 좀 더 잘 팔기 위해서 만든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칵테일을 더 비싸게 팔았고, 비싼 이유를 합리화시켰으니, 이건 마케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신은 바텐더가 가져야 할 문제 아닌가? 그걸 왜 소비자들한테 강요하며 파느냐, 이거다.
이한별 강요한 적 없고, 새로운 것에 대해서 손님들한테 전달하고자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웬만큼 이름난 바에서 나오는 칵테일은 거의 다 크래프트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근데 크래프트 칵테일이 화두가 된 이유는 그렇지 않은 바도 많기 때문이다. 그걸 짚고 넘어간다는 뜻으로 등장한 ‘운동’인데 우리는 그 단어와 표현 자체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다.
바 업계가 사실 새로운 시장과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동력으로서 ‘크래프트 칵테일’이 등장한 것 같다. 맞다, 틀리다의 개념이 아니고, 유행이라 모두가 사용해야 하는 단어도 아니다. 앞으로 시장의 움직임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무엇을 변화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유용석 단순히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칵테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칵테일 한잔에도 역사가 있고, 놀라운 이야기도 있고 그러면 소비자들이 칵테일을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만드는 방식이 기존과 다르면 당연히 가치와 가격도 달라진다. 이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이슈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가짜들은 걸러질 것이다.
크래프트 칵테일 운동으로 칵테일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건 좋은데, 이게 가격 문제로 치환되니 여러 사람이 민감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바에 들어서기까지 큰마음을 먹었는데, 소비자로선 높은 ‘가격’ 자체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때도 있다. 바의 커버차지 문제, 칵테일 가격 등은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유용석 커버차지를 운용할지 여부는 바의 선택이다. 커버차지가 있는 바를 갈지 말지 여부도 손님의 선택이다. 지금 이 두 선택이 맞물리면서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성민 커버차지가 보통 5천~1만원이다. 요즘 손님들은 커버차지를 낼 준비가 돼 있다. 앞으론 양극화라면 양극화가 될 거 같다. 새로 생기는 바 중에는 커버차지를 더 받는 곳도 있을 것이다. 대신 제공하는 서비스가 더 많아지겠지.
김봉하 일본에서는 칵테일 한 잔 먹고 가는 뜨내기가 워낙 많아 커버차지를 시작했다. 실제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자리를 다 뺏는 걸 막기 위해서다. 팁 문화가 없는 나라이기도 하고. 커버차지는 낸 돈이 아까워서 두 잔, 세 잔을 좀 더 즐기고 가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커버차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개념이 약간 달라졌다. 브랜드 생수를 주거나 구두를 닦아주거나. 그 돈 만큼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유용석 일본 긴자 지역의 바는 거의 커버차지가 있어 젊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힘들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어른스러운 바로 변해버렸고, 그러다 보니 바의 유연함이 좀 떨어지는 것이 단점으로 부각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커버차지로 인해 칵테일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커버차지라는 가격 문턱을 넘고 나면 칵테일 가격이 그렇게 비쌀 이유는 없는데….
안성진 다양한 고객이 새로 유입되어야 하는데 커버차지가 생기면서 바의 문턱이 높아졌다. 그렇게 이로 인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의 수익은 좋아질 수 있지만.
유용석 커버차지 받는 동네와 안 받는 동네가 자연스럽게 구별되어 발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커버차지 제도가 다양한 가격대의 바를 형성하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조금 더 민감한 이야기를 해볼까? 바에 자주 드나들면서, 꽤 많은 바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은 술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 불법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도 고민이다.
유재광 막아야 할 일이다. 유독 비수입품을 많이 갖다 놓고 프로모션에 이용하는 바도 있는데, 문제다.
유용석 비수입품으로 만든 술을 그 바의 주특기로 삼는 경우도 있다.
김봉하 이 자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칙이니까.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칵테일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은 욕심이야 누군들 없을까. 물론 수입되는 주류가 한정적이라는 국내 현실이 있지만, 나는 그 제한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끌어내는 게 바텐더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꼭 필요해서 쓴다? 손님들이 찾아서 쓴다? “금연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며 내가 피우고 싶어서 피우는데 무슨 문제 있어?”라는 것과 같은 논리다.
안성진 바텐더들이 연합해 수입사에 요청할 수도 있는 일이다. 싱글 몰트위스키가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몇 가지나 있었을까? 수입사에 끊임없이 요청하고, 수입 물량을 소진할만한 다양한 방편을 연구했다. 지금 이렇게 시장이 확대되고 정식으로 수입되는 위스키가 많은 것은 그때의 노력 때문이기도 하다.
이한별 바가 비수입품을 가져와 그걸 홍보 수단으로 삼는 건 질타를 받아야 되는 건 맞는데, 현실이 가혹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때로는 그 술이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칵테일도 있다.
유재광 그런 경우라면, 바텐더가 해당 칵테일을 약간 다르게, 트위스트해서 풀어야 한다. 비터가 없으면 만들고, 필요한 술이 수입 안 되면 인퓨징해서 써야 한다. 바텐더들이 암암리에 편하게 비수입품 가져다 썼다면, 이젠 그러지 말아야 할 시기가 됐다. 수입 술의 범위가 꽤 다양해지지 않았나? 일본에서 술 사오는 것도 그만해야 할 때다.
아직도 수입되는 술이 한정적이지 않나? 와인, 맥주 등 주류 업계 전반에 걸쳐 쌓여온 불만이다.
안성진 술이 부족하다는 의견에는 반대다. 바텐더에게 술이 총알인 건 맞다. 하지만 바 초창기만 해도 모던 바와 구색이 비슷할 정도로 술이 없었다. 지금은 10배, 100배는 많이 들어온다. 있는 술로 칵테일을 제대로 만들면, 시장이 커지면서 수입사들이 또 다른 술을 수입할 것이다.
김봉하 작년, 바카디에서 노일리프랏을 수입했다. 꼭 필요한데 수입이 안 돼 바텐더들이 일본 가서 사오던 술이다. 그런데 정작 이게 많이 팔리질 않는다. 수요가 생각보다 적다는 거다.
안성진 수입사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예전에는 창고 비용, 물류비, 수익을 고려해 한 달에 1천 병씩 팔아야 한다는 계산을 세웠다면 이젠 다품종으로, 소량씩 수입했으면 좋겠다.
이한별 오늘의 논의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바텐더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말 수입되는 술이 다양할까? 지금 수입되는 버무스로 충분한가?
유용석 안성진 바텐더와 이한별 바텐더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술을 판매한다. 안성진 바텐더는 지금 술이 많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이한별 바텐더는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필요한 술이 다르니까.
요즘 칵테일 트렌드엔 비터와 버무스가 중요해졌으니까. 앞으로 이런 칵테일 시장이 커지면 수입사도 움직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을 꼽자면?
이한별 바텐더들이 훨씬 더 많이 교류해야 한다. 지식 공유를 포함해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느낌도 강하고 선후배 관계도 딱딱한 편인데 환경 자체가 변해야 한다. 어차피 오늘 나온 여러 가지 문제는 혼자서 해결 못한다.
유재광 셰프들이 해외 가서 오랫동안 수련해 파스타 하나 만들고 1만8천원을 받는다. 그런데 아무런 고민 없이 진에 토닉워터 타서 1만8천원 받는 거 정당한 건 아니지 않나? 외부에서 신랄하게 좀 질타를 해줬으면 좋겠다. 소비자가 됐든 매거진이 됐든. 그게 맞느냐고 물었으면 좋겠다.
박성민 올해도 바는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손님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그것과 발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좋은 바텐더들이 성장하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이 업계의 위기다. 커버차지도 냈는데 칵테일은 맛이 없고 서비스는 별로인 데다 술에 대해 물어봤는데 대답도 못하는 바텐더? 그러면 손님들이 이 문화에 머물러 있으려고 할까? 나는 강제적으로라도 업계에서 에이스라고 하는 헤드 바텐더들이 확실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문화를 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 후배를 키워놔야지 내가 나중에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유용석 엄청난 공부와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바는 하루하루 빠르게 달라진다.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소비자들이 이런 역동성을 한번 경험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바에 한번 가보라고. 지금 바에 재미있는 게 굉장히 많다고. 오늘 우리가 한 얘기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요란하지 않게, 우물우물
성북동 좁은 골목, 어두움 밤을 밝히는 식당 하나가 있다.
성북동 골목에 자리한 ‘우물우물’은 거창하진 않지만 세심한 요리를 내는 식당이다. 영국식 요리를 표방하지만, 요리의 국적이 별로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뻔하지 않은 소스와 함께 나오는 비트, 엔다이브, 콜라비 샐러드가 다채롭고 신선하다. 특히 고기 요리에 항상 어울리는 샐러드가 곁들여 나와 접시의 중심을 잡아준다. 껍질에 칼집을 넣고 바삭하게 구운 돼지고기 요리는 맛도 모양도 새롭다.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 곳이라 마음 편하게 와인을 들고가 마실 수도 있으니 집이 근처라면, 어쩐지 북적이는 동네가 싫어졌다면, 예약 전화를 넣어볼 만하다. 참, 식당 안에 진짜 우물이 있어서 이름이 ‘우물우물’이다. 02-747-4297



새집 –카페 &슈퍼마켓
봄날처럼 만화방창 문을 연 공간 세 곳.
SM 마켓 삼성동 한가운데에 소녀시대 맥주, 동방신기 진저 월넛, 엑소 손짬뽕, 슈퍼주니어 팝콘, 에프엑스 아이스크림을 파는 슈퍼마켓이 생겼다. SM 커뮤니케이션 센터는 스타라는 콘텐츠를 다방면으로 호기롭게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썸 슈퍼마켓은 신세계 위드미와 함께 찹쌀김스낵, 잼 등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었고, 썸 카페는 친숙한 이탤리언 메뉴를 비롯, 김선생과 함께 한식 메뉴도 개발했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 공간과 아티스트의 연습 장면을 구경할 수 있는 큼직한 트레이닝 룸까지 두루 갖췄다.

마시러 가요 –명동 플로팅
오늘밤은 명동 플로팅으로 간다.
국내 프리미엄 진 시장이 커지고 토닉워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꿈틀대기 시작한 게 작년이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프리미엄 진 전문바가 생겼다. 명동 L7호텔 21층에 위치한 바 ‘플로팅’은 서른 여섯 가지 진 메뉴를 갖추고 ‘진토니카’를 전면에 내세우는 루프탑 바bar다. ‘진토니카’는 진과 토닉, 그리고 각 진의 개성에 어울리는 다양한 가니쉬를 더하는 술로, 지난 9월호 <GQ>에서도 다룬 바 있는 트렌드다. 커다란 와인잔에 서브되는데, 색깔도 화려하고 마시는 기분도 색다르다. 게다가 남산 타워와 명동 일대의 야경까지 더해지면 술 맛이 제대로 산다. 밤 공기가 너무 좋아 주체할 수가 없을 때, 그 기분에 술이 마구마구 당길 때, 진과 진토니카의 유행을 꼼꼼히 짚어보고 싶을 때, 꼭 한 번 가볼 만한 공간이다.




봄, 칵테일, 그리고 믹솔로지
‘믹솔로지’에 가면 봄바람 맞으러 공원에 나온 기분이 든다.
청담동 ‘믹솔로지’는 지하 1층에 있지만, 바에 앉으면 창문을 열어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동안 클래식 바에서 느꼈던 알 듯 모를 듯한 답답함이 모두 날아가는 듯하달까? 반짝이는 바탑과 상쾌한 창작 칵테일, 각자의 색깔이 선명한 바텐더와 그들의 분방한 태도까지, 모든 면에서 한 발짝 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김현, 김준희 그리고 컨설턴트로 참여한 김봉하 바텐더는 이 바의 지지하는 세 개의 기둥이자 숨통을 틔우는 세 개의 창문과 같다. 이 바의 첫 경험은 “발끝부터 내공을 끌어올려 만들었다”는, 각자의 철학이 군더더기 없이 녹아든 시그니처 칵테일로 시작하길 권한다. 02-511-8214



역삼동에서 찾은 ‘안심’
오너 셰프가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손님은 안심이 된다.



안진석 셰프의 시작은 좀 엉뚱하다. 공대생인 그가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고, 철원 최전방에 배치돼 소수의 군인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요리한 이야기는 평범하다. 하지만 요리에 대한 관심과 재미가 일본 요리학교, 청담동 스시야, 콘래드 호텔 등을 거치며 쭉 뻗어나갔다면 어떨까? 그리고 올해 초, 역삼동 작은 골목에 ‘안심’이라는 이름으로 일식집까지 냈다. “마라톤으로 치면 10킬로미터 정도 지점이지 않을까요? 그릇, 재료, 테크닉, 좀 더 완성해야 할 것이 많아요. 아직도 목이 너무 말라요.” 이제 그의 목표는 더 선명해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사시미와 생선구이를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이제 막 달리기 시작했다. 손님은 그 속도를 즐기면 된다. 이곳에선 이자카야보다는 공이 더 들어가고, 코스 요리보다는 편안한 접시를 낸다. 한눈에 봐도 원가률이 높다. 맛에서는 꼼수가 보이지 않는다. 안심이 되는 ‘안심’이다. 070-8808-0618
달라진 캔맥주
“캔 따는 시원한 소리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요즘 캔맥주는 소리 때문에 인기 있는 게 아닙니다.” 해프 에이커 맥주의 가브리엘 매그리아가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캔맥주는 ‘품질은 별로지만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술’이라는 숨은 뜻을 품어왔지만 이제 달라졌다. 미국 내 유명한 브루어들이 너도나도 캔에 가장 잘나가는 맥주(샌프란시스코 라거부터 시카고 IPA까지)를 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캔은 병보다 장점이 많다. 불투명한 캔이 자외선으로부터 홉을 지켜주고, 유통하기가 병보다 편리하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생겼다. 요즘 맥주 생산자들이 죽고 못사는 ‘디자인 이미지’를 그릴 훨씬 넓은 캔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마실 준비가 됐나?
나만 몰랐던 와인 #포트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와 당도를 올린 ‘주정강화 와인’이 요즘 자주 보인다. 포르투칼의 포트 와인, A부터 Z까지 정리했다.

어떻게 만드나? 수송 과정에서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술이다. 17세기,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 와인을 이송하는 과정에 브랜디를 첨가하면 험한 뱃길에서도 와인이 버틴다는 것을 발견하고 당도와 도수가 모두 높은 와인을 만들었다. 당시 최대 와인 소비국이었던 영국이 백년전쟁 이후 프랑스로부터 와인 수입이 중단되자 다른 나라의 와인을 공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고, 그 결과 포르투갈 도루Douro 강 상류의 포도밭을 찾아냈다. 이 지역에서는 30 여 종의 토착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는데, 발효조에 사람이 들어가 발로 포도를 밟아 으깨는 전통 방식으로 양조했다. 전통적인 와인 양조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 풍경은 포트 와인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지금까지 이 방식을 고수하는 와이너리도 있다. 압착, 발효, 숙성으로 이어지는 보통의 와인 양조 과정에서 포트 와인은 발효 중간에 브랜디를 첨가해 발효를 멈춘다. 셰리는 발효가 끝난 뒤 브랜디를 첨가하는 것과 달리 포트는 발효 중간에 주정을 첨가하기 때문에 알코올로 바뀌지 못한 잔당이 남아 달콤한 맛의 와인이 완성된다. 포트 와인에 들어가는 브랜디는 포도를 갓 증류한 77도의 투명한 술로, 포트 와인의 맛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550리터 발효조의 약 1/5 정도가 브랜디로 채워지기 때문에 그 풍미가 어떻게 와인과 어우러져 숙성되는지에 따라 포트 와인의 품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 토우리가 나치오날 Touriga Nacional 포트 와인을 만들 때 가장 널리 사용하는 품종. 이 외에 약 30종의 품종을 수확해 함께 발효시킨다. 포트 와인용 품종은 포도알이 작고 껍질이 두껍다. 라가르 Lagar 맨발로 포도를 밟아 압착하는, 대중목욕탕처럼 생긴 넓은 사각의 화강암 발효조. 어깨동무를 한 사람이 ‘우리 집에 왜 왔니’ 게임을 하듯 마주 보고 서서 구령에 맞춰 발을 구른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지고, 이후엔 개개인이 자유롭게 발효조를 돌아다니면서 포도를 밟는다. 이때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파티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CHECK POINT] 사진 속은 포트의 고향인 포르투Porto의 모습이다. 포트 와인은 이 지역 최고의 관광 상품이기도 하다. 도심에 와이너리가 몰려 있어 하루에 2~3군데를 걸어서 방문할 수도 있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a0f5e43bea-300x300.jpg)
![[CHECK POINT] 유럽에서는 포트 와인을 식후주와 ‘취침주’로 자주 마신다.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와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에이지드 토니 포트는 소테른을 대체할 만한 디저트 와인으로 꼽히며, 크림브륄레나 타르트와 잘 어울린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a0f5fc770e-300x300.jpg)
![[CHECK POINT] 포트 와인은 시가와 잘 어울린다. 위스키나 브랜디 뺨을 후려칠 만큼.](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a0f60f1927-300x300.jpg)
![[라모스 핀토스 레이드 바틀드 빈티지 2009] 1880년에 설립된 와이너리로 1890년대에 카를로스 국왕의 전용 포트로 납품된 바 있다. 초콜릿 풍미가 스치는 피니시가 매력이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a0f6258df2-300x300.jpg)
포트 와인의 대표적인 네 가지 스타일
1 루비 포트 포트 와인의 대표적인 스타일 네 가지. 루비 포트는 양조 후 2~3년 정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일반적인 레드 와인 색에 가깝고 과실 향이 두드러진다. 기존 와인 애호가들도 어색해하지 않을, 신선하고 달콤한 포트 와인.
2 토니 포트 루비 포트에 화이트 포트 와인을 섞고 오크통에서 5~6년 정도 숙성된 와인. 10년, 20년, 30년씩 길게 숙성시켜 오크통 풍미를 더 끌어올린 ‘에이지드 토니 포트’는 위스키처럼 고소하고 농밀한 맛이 난다.
3 빈티지 포트 빈티지 포트는 특정 해의 최상급 포도만으로 만든 후 오크통이 아닌 병에서 오래 숙성시킨다. 그래서 과일 풍미가 살아 있다. 고급 빈티지 포트는 50년 이상 병입 숙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와인콜렉터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4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 빈티지 포트보다 뛰어나진 않아도 작황이 좋은 해의 포도만으로 양조하고 오크통에 5년 이상 숙성시킨 뒤 병입한다. 라벨에 해당 연도를 기재하고, LBV(Late Bottled Vintage)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전문가가 고른 포트




1 테일러 칩 드라이 유럽에서는 화이트 포트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식후주뿐만 아니라 식전주로 즐기기에 좋고 토닉워터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기에도 좋아서다. 소테른처럼 푸아 그라와도 잘 어울린다. 가정에서 매일 즐기는 방법은 차가운 과일 아이스크림 (특히 레몬 셔벗) 위에 화이트 포트 와인을 한두 스푼 흩뿌리는 것이다. 지금 먹은 칼로리가 모두 뱃살이 된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양진원(< 와인21닷컴 > 와인 전문 기자)
2 다우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 포트 11년 전 리스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 나는 와인 문외한이었다. 포르투갈 친구의 권유로 마시게 된 이 와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잔 밖으로 뛰쳐나오는 농익은 과일, 고소한 견과, 캐러멜, 다크 초콜릿 향까지! 그 이후 이 와인 한두 잔과 구운 아몬드 몇 알로 하루의 피로를 녹이곤 했다. 지금도 초콜릿 케이크나 피칸 파이를 즐길 때면 이 와인을 곁들인다. 김상미(와인 칼럼리스트)
3 테일러 10년 토니 포트 20도에 육박하는 알코올이나 다크 초콜릿을 녹인 듯한 육중한 바디, 그 농밀한 향을 생각하면 포트는 아무래도 숙성된 것이 좋다. 비싸고 귀한 빈티지 포트야 무적의 상대지만 지갑 사정까지 고려해 타협하면 이 와인을 고르겠다. 에그 타르트, 무화과, 치즈를 한 접시 담아 오면 한 잔이 두 잔 되고, 소리 소문 없이 병이 빈다. 강은영(< 와인리뷰 > 기자)
4 그라함 20년 토니 포트 NV 섭씨 14도 정도로 차갑게 칠링해 마신다면 다가오는 봄과도 잘 어울릴 토니 포트다. 구수한 견과 향이 올라오고 커피, 스파이스, 캐러멜 시럽의 기운이 복합미를 더한다. 과일 풍미는 상당 부분 사그라들었지만 산미가 있어 존재감은 여전하다. 투명하고 세련된 병 모양도 이 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김윤석(< 와인21닷컴 > 와인 전문 기자)
포트 와이너리에서의 하루
포르투는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약 4시간 떨어진 항구 도시다. 도루 강 상류에 있는 포도밭에서 양조한 와인은 강 하류인 이곳에 모여 숙성된다. 포트 와인이라는 이름도 이 지명에서 유래했다. 포르투는 강을 끼고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덕에 늘 관광객이 북적이는데, 특히 이름난 포트 와이너리가 몰려 있는 언덕에 올라가면 엽서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관광객을 위해 하루 3~4번씩 영어로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위치도 서로 근접해 하루에도 3~4개의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 있다. 그중 한 곳만 방문한다면 레스토랑과 바, 시음이 가능한 특별한 룸부터 판매 숍까지 근사하게 갖춘 그라함Graham 와이너리가 좋겠다. 특히 시음장에 가면 가격에 따라 시음 가능한 포트가 달라지는데 선택지가 아주 다채롭다. 얼큰하게 취한 채 와이너리를 나오면 눈부신 도루 강의 풍광이 해장을 돕는다.
소문난 하우스 블렌딩 커피 9
운동 전 세포와 투지를 흔들어 깨운다. 서울에서 소문난 하우스 블렌딩 커피 9.

FRITZ COFFEE COMPANY 서울시네마 1만6천원 (200g), 프츠.마포구 도화동 179-9 3275-2045

CHAMP COFFEE 너티, 초코 에스프레소 토크 1만8천원(200g), 챔프커피 로스터스. 용산구 한남동 768-26 1층 794-4516

KIM YAK GUK COFFEE 땅콩버터 7천원대(100g), 김약국커피.용산구 효창동 74 701-4700

SMALL COFFEE 브라질 스페셜 리저브 ‘봄봄’ 5천원(100g), 스몰커피 로스터스.마포구 망원1동399-36 1층 323-2483

IKOVOX 재즈 1만5천5백원(180g), 이코복스. 강남구 신사동 534-10 545-2010

ANTHRACITE 버터 팻 트리오 1만원(200g), 앤트러싸이트.마포구 합정동 357-6 322-0009

MARKLANE COFFEE 에티오피아 1만5천원(200g), 마크레인.강남구 신사동 657-24 516-5202

TAILOR COFFEE 퍼플 레인 1만5천원(200g), 테일러 커피.마포구 서교동 329-15 335-0355

BEAN BROTHERS 매달 전혀 다른 두 가지 커피로 구성되는 월간 빈브라더스 2만8천원(300g), 빈브라더스.마포구 합정동 368-3 6012-2001
나만 몰랐던 와인 #셰리와인

어떻게 만드나? 스페인 헤레즈 지방의 술로, 셰리Sherry라는 이름 자체가 헤레즈jerez를 영어 식으로 엉뚱하게 발음한 것이다. 그래서 셰리 와인 라벨에는 항상 Jerez-Xeres-Sherry(각 스페인어, 불어, 영어)라는 표기가 있다. 험하고 긴 뱃길 수송에 와인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더하면서 시작됐다는 점은 포트 와인과 비슷하지만, 양조 방법과 숙성 방식은 꽤 다르다. 포트 와인은 발효 과정 중간에 브랜디를 더해 알코올로 변하기 전의 당을 남겼다면(그래서 달다), 셰리는 발효가 거의 끝난 시점에 브랜디를 더해 전체적으로 드라이하고, 알코올 도수도 낮다. 게다가 셰리의 숙성 과정에는 세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첫 번째는 효모 숙성이다. 이 지역 효모가 숙성 중인 오크통 안에 들어가 와인 표면에 곰팡이와 같은 막을 형성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셰리 와인만의 독특한 아몬드 향이 배가된다. 이렇게 만든 와인이 가장 일반적인 타입의 드라이 셰리인 ‘피노’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팔로미노 피노’ 품종으로 만들어 색만 보면 소비뇽 블랑과 비슷하다. 두 번째는 산화 숙성이다. 알코올 도수를 18도로 맞추고 효모 막 생성을 억제시킨 셰리에만 진행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오크통에 담을 때 빈 공간을 약간 남겨 산소와 접촉하게 한다. 오크통에서 뽑아낸 향이 더해져 복합적인 와인이 완성된다. 세 번째는 숙성된 와인을 블렌딩하는 ‘솔레라 시스템’이다.
• 플로르 Flor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의 셰리를 숙성시킬 때 생기는 거품 같은 곰팡이 막. 이 막이 글리세린을 앗아가 맛이 드라이해지며 날카롭고 톡 쏘는 듯한 향이 추가된다.
• 솔레라 시스템 Solera system 맨 아래 줄에 있는(가장 오래 숙성한) 오크통의 1/4을 비운 뒤, 한 줄 위의 오크통(1년 덜 숙성한) 속 와인을 꺼내 아래 통을 채우는 숙성법이다. 이런 블렌딩으로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주로 3~5줄 높이의 피라미드 형태로 오크통을 쌓으니, 점차 와인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솔레라’는 가장 아래 줄의 오크통을 일컫는 말로 ‘지면’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수엘로’에서 왔다.
![[루스토 페드로 히메네즈 산 에밀리오 솔레라 레세르바] 1986년에 설립한 셰리 와이너리로 1950년대부터 전 세계에 수출을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이 와인은 깜짝 놀라게 달지만, 입속에서 풍성하게 부푸는 셰리의 매력을 그대로 담았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b3cc264cb-300x300.jpg)
![[곤잘레스 비야스 알폰소] ‘티오페페’ 피노 셰리로 유명한 곤잘레스 비야스 와이너리에서 만든 올로로소. 견과류 풍미가 진하고 8년간 솔레라 시스템으로 숙성해 바닐라 향도 감돈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b3d1a3397-300x300.jpg)
![[CHECK POINT] 싱글 몰트위스키의 세계에선 셰리 와인이 젖줄이다. 셰리를 담았던 오크통에 위스키 원액을 넣어 숙성하기 때문이다. 다른 오크통을 쓸 때도 있지만 셰리 오크통이 위스키 특유의 알싸하고 그윽한 풍미를 만든다. 셰리와 위스키의 숙성년도를 합치면 하나의 오크통은 약 70년을 산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b3ce7771a-300x300.jpg)
![[CHECK POINT] 요즘은 바텐더들 덕에 셰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도주 칵테일 열풍과 클래식 칵테일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작용한 것이다. 셰리를 베이스로 활용하면 독특한 와인 풍미의 칵테일이 완성된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b3d36a2b3-300x300.jpg)
![[CHECK POINT] 올리브, 하몽, 꼴뚜기 튀김 같은 타파스는 모두 셰리와 잘 어울린다. 셰리가 만능이라서는 아니다. 셰리는 드라이한 것부터 달콤한 것까지, 호박색 화이트 와인부터 검은색에 가까운 레 드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제조되기 때문이다. 피노 타입 셰리는 짭짤한 타파스와 특히 잘 맞는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b3d05783c-300x300.jpg)
셰리 와인의 대표적인 네 가지 스타일
1 피노 대표적인 셰리 와인. 화이트 와인인데 극도로 드라이해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개봉 후 바로 마셔야 맛이 살아 있다. 그래서 장사가 잘되는 타파스바에서 피노를 마셔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2 페드로 히메네즈 페드로 히메네즈 품종의 포도를 수확 후 땅 위에서 앞뒤로 뒤집어가며 15일간 햇빛에 말려 당도를 바짝 끌어올린 와인이다. 색깔은 간장처럼 짙고 맛은 조청만큼이나 달콤하고 진득하다. 이 술 자체로 디저트가 된다.
3 올로로소 플로르 없이 산화 숙성과 솔레라 시스템을 거쳐 만든 셰리 스타일이다. 앞선 종류보단 맛이 더 묵직하고 알차다. 알코올 도수는 20도 정도이며 페드로 히메네즈를 소량 블렌딩해 단맛을 다양하게 조절한다.
4 아몬티야도 플로르가 있는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다 중간에 플로르를 제외하고 산화 숙성 방법으로 추가 숙성을 진행하는 와인 타입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와인이 꿀차색으로 변하고 아몬드 향도 한층 더 짙어진다.
셰리로 흔든 칵테일



1 셰리 코블러 1830년대의 칵테일. 코블(자갈) 사이즈의 작은 얼음을 사용해 ‘셰리 코블러’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바에서 얼음이 본격적으로 유통되던 시절과 궤를 같이하는 술이다. 그 시대에 막 개발된 빨대를 처음 사용한 술이기도 하다. 아몬티야도 셰리와 심플 시럽, 얇게 저민 레몬과 오렌지가 들어간다. 알코올 도수가 약해서 술술 넘어가고, 열대 과일에서 느껴지는 흔한 단맛보다는 셰리 와인 특유의 단맛이 새롭다.
2 던힐 1900년대 초반, 런던 피카딜리의 근처의 한 바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술이다. 진, 드라이 베르무트, 셰리가 1:1:1 비율로 들어가, 네그로니나 퍼펙트 마티니와 얼추 비슷한 느낌이다. 스위트 베르무트 대신 크림 셰리를 사용한 셈. 크림 셰리는 올로로소 타입의 셰리에 페드로 히메네즈를 섞어 달콤하고 기름진 맛이 특징이다. 이 칵테일에는 압생트도 들어가는데, 잔 안에 살짝 묻히는 느낌으로만 넣는다.
3 셰리 칵테일 1800년대 초에는 ‘칵테일’이 지금처럼 믹스드 드링크를 아우르는 단어로 쓰인 게 아니라 비터, 설탕, 물, 술이 들어간 음료를 한정해 일컬었다. 이런 ‘칵테일’의 확장판이자 압생트와 마라스키노 리큐르를 ‘킥’으로 사용한 술이 사진 속 ‘셰리 칵테일’이다. 뉴욕 ‘데드래빗’의 잭 맥개리 바텐더가 선보인 이후 인기를 얻었다. 연남동 ‘올드패션드’ 바에서도 조만간 셰리를 활용한 칵테일을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마드리드의 셰리바
런던, 뉴욕, 마드리드 곳곳에 셰리바가 포진해 있다. 간단한 타파스를 내며, 1백여 종이 넘는 셰리를 빼곡히 갖추고 있어 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놀이공원이자 덫이다. 특히 요즘은 미국의 칵테일바에서도 셰리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 클래식 칵테일 복원이 인기로 셰리 와인도 덩달아 쓸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셰리의 본고장 스페인에 가면 셰리바의 셀렉션이 한층 더 화려해진다. 마드리드에 있는 ‘라 베넨시아’는 일흔 살을 훌쩍 넘긴 셰리바다. 낮이건 밤이건 매 시간 손님이 꽉 들어차 있는데, 겨우 자리를 비집고 바 앞에 서면 무뚝뚝한 직원이 술을 내온다. 주문한 술과 가격은 직원이 나무로 된 바 위에 분필로 대충 적어주고, 안주는 기본적인 타파스 몇 종만 주문할 수 있다. 셰리를 즐긴다면, 이곳에서 자신의 주량과 금전의 한계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 분명 올 테다.
5대째 내려오는 와인
나만 몰랐던 와인 #마르살라

어떻게 만드나? 마데이라 섬은 포르투갈령이지만 모로코에 가깝다. 15세기, 인도, 브라질, 아메리카 대륙으로 운송되는 유럽 물자를 실은 배가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이기도 했다. 당시 포르투갈 상인들이 배에 실은 마데이라는 (포트나 셰리에 비해서도) 긴 항해시간을 견뎌야 했기 때문에 마데이라 섬에 흔한 사탕수수로 만든 주정을 더해 변질을 막았다. 그렇게 항해를 시작한 마데이라는 뜨거운 햇빛과 공기에 장시간 노출된 덕에 독특한 개성을 가진 맛으로 변했다. 마데이라는 포트나 셰리에 비해 산미가 강하다는 게 특징인데, 이 산미 덕에 음식과 함께 마시기도 더 수월하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있다. 지금도 고급 마데이라는 이 전통적인 숙성 과정을 재현한 칸테이로 방식으로 양조한다. 칸테이로 숙성은 보통 2년간 진행되고, 와인의 산화와 숙성에 관여하며 20년 이상 숙성시키는 빈티지 마데이라도 생산한다. 마르살라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주정강화 와인이다. 1773년, 셰리와 포트를 취급하는 영국 상인 존 우드하우스가 마르살라에 들렀다 발견해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시켰다. 다른 주정강화 와인과 양조 과정이 비슷하고 셰리의 솔레라 시스템 같은 숙성 과정도 거친다. 이 밖에 짙은 황금색을 얻기 위해 끓인 포도즙(Mosto Cotto)을 더하거나 달콤한 맛을 배가하기 위해 과하게 익어버린 그릴로 품종으로 만든 주정강화 포도즙(Mistella)을 섞기도 한다.
• 칸테이로 Canteiro 해가 드는 저장고에 오크통을 두고 섭씨 30~35도의 자연적인 열에 노출시키는 전통 숙성 방식이다. 브라질 나무로 만든 오크통에서 최소 2년을 숙성시킨다. 와인 메이커는 오크통의 위치를 바꿔가며 온도와 증발을 조절한다. 스테인리스 통에 약 45도의 인위적인 열을 3개월간 가하는 에스투화젬Estufagem 방식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 프라스케이라 Frasqueira 20년 이상 숙성시킨 후 병입해 다시 2년 간 숙성시킨다. 100년도 거뜬할 정도로 장기 숙성력이 좋다. 2000년대 들어서는 5~18년으로 숙성 기간을 줄인 콜헤이타Colheita 카테고리도 선보이고 있다.
![[CHECK POINT] 마데이라는 포트처럼 열고 나서도 몇 달을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싱글족의 친구’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단, 보관할 때는 반드시 세워두거나 스토퍼를 쓴다. 산미가 강해 코르크에 와인이 닿으면 상할 수 있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e089cff45-300x300.jpg)
![[펠레그리노 마르살라 피노 아이피 세코] 시칠리아 섬의 대표 와이너리. 요리에만 쓰기 아까운 마르살라를 많이 양조한다. 사진 속 와인은 달지 않고 오크 향이 묵직하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e08b20ebf-300x300.jpg)
![[블랜디스 마데이라 세르시알 10년] 가장 드라이안 품종인 세르시알만으로 만들고 10년 숙성한다. 단맛보단 산뜻한 산미가 특징이다. 차갑게 마셔야 맛있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e08c9815e-300x300.jpg)
![[CHECK POINT] 흔히 파운드케이크를 마데이라 케이크라고도 부른다. 영국 빵이지만, 마데이라와 곁들여 먹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작 진짜 ‘마데이라의 케이크’는 색이 검고 꿀맛도 진하며 향도 세다. 볼로 드 멜(Bolo de Mel)이라고 부른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e08e9547e-300x300.jpg)
![[주스티노스 마데이라 콜헤이타 1999] 마데이라 섬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레드 품종인 틴타 네그라로만 만든 이 와인은 최소 5년 이상의 숙성 과정을 거쳐 위스키 같은 호박색을 띤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e0900f840-300x300.jpg)
![[CHECK POINT] 마데이라와 마르살라는 요리 소스로 많이 쓴다. 프렌치 요리에선 마데이라를, 이탤리언 요리에선 마르살라를 사용한다. 특히 양파와 버섯을 넣고 졸인 마르살라를 끼얹는 ‘치킨 마르살라’가 대표적이다.](http://img.gqkorea.co.kr/gq/2016/03/style_56fce09172fb4-300x300.jpg)
마르살라의 대표적인 네 가지 스타일
1 세르시알 마데이라는 단일 품종이 기본이라 구분 역시 품종으로 하는 것이 좋다. 유일한 레드 품종인 틴타 네그라를 제외한 화이트 품종 네 가지로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드라이한 세르시알은 복숭아 향과 스모키한 산도가 특징이다.
2 베르데호 세르시알보다는 달지만 부알보다는 드라이하다. 레몬, 오이, 볏짚 향이 감돌고 화이트 품종이지만 황금색을 띤다. 세르시알과 베르데호는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처럼 차갑게 칠링하면 더 맛있다.
3 부알 미디엄 스위트인 부알 품종으로 만든 마데이라는 바닐라와 시나몬 향이 지배적이다. 말린 과일 향과 통밀빵의 단면에 코를 가져갔을 때의 향도 난다. 숙성 후에도 산미가 좋아 샥스핀 수프 같은 요리와도 잘 맞는다.
4 말름지 말바시아라고도 부르는 품종으로 단맛이 강한 풀바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부알이 약간 초록빛이 도는 갈색이라면 말름지는 짙은 고동색이다. 캐러멜과 건포도 향이 진하고 고춧가루와 해선장이 떠오르는 향도 난다.
마르살라 소스와 마데이라 소스


1 적새우와 리코타로 속을 채운 아뇰로티, 푸아그라, 마르살라 소스 압구정 오스테리아 꼬또에서 만드는 파스타 요리다. 생파스타 메뉴를 강화하면서 추가한 것으로 마르살라 소스의 매력을 재대로 버무렸다. 산도가 높지 않지만 당도가 잡내를 잘 잡아준다. 특히 새우, 푸아그라와 향이 잘 어울린다. 마르살라 와인은 너무 많이 졸이면 캐러멜 향이 너무 강해지기 때문에 푸아그라와 아뇰로티가 충분히 익으면 마지막에 추가한다. 그릴소렐이라는 청포도 향이 나는 허브를 흩뿌려 산미를 약간 더하면서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느끼한 맛을 잡는다.
2 마데이라 소스의 드라이 에이지드 국내산 한우 등심 숯불구이 신라호텔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인 콘티넨탈의 메인 요리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메뉴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육즙과 풍미를 살린 드라이 에이지드 한우에는 진한 오크 향과 단맛을 더해줄 마데이라 소스를 쓴다. 약 일주일간 진하게 뽑은 육수를 졸여 데미그라스 소스로 만들고, 마데이라 와인 역시 반으로 졸여 앞선 소스와 혼합한다. 마데이라 소스에 트러플과 트러플 오일을 섞으면 페리고 소스가 되는데, 이 소스를 푸아그라와 함께 제공하기도 한다.
팬톤이 뽑아낸 마르살라
색채 전문 기업 팬톤이 2015년에 선정한 올해의 색이 ‘마르살라’다. ‘버건디’ 색으로 익숙한 레드 와인 색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채도가 낮고 차분한 건 오크통에서 숙성된 마르살라의 느낌을 표현했기 때문일 테다. 왼쪽 사진 속 펠레그리노 피노 세코의 색이 팬톤의 마르살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마르살라는 좀 더 짙은 호박색에 가깝다. 탈 듯 말 듯 오븐에 잘 구운 단호박 색깔처럼. 팬톤이 마르살라를 색상 이름으로 고른 건, 마르살라가 새로운 것을 찾는 소믈리에와 바텐더들에게 트렌디한 술로 자리잡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콜롬보의 딸
코르나스는 프랑스 북부 론 중에서도 경사가 가파른 골짜기 사이에 위치한 작은 와인 산지다. 세계 2차대전 이후엔 평지대 와이너리만 겨우 살아남았는데, 한 남자가 뛰어들어 이 땅을 재탄생시켰다. 이 슈퍼맨 같은 남자 장 뤽 콜롬보는 이후 ‘모던 코르나스의 아버지’, ‘코르나스를 와인 산지 지도에 올린 사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로르 콜롬보(사진)는 그의 딸이다. 자연을 중시하는 농법을 고집하고, 관개를 금지해 테루아를 풍성하게 하는 와이너리의 철학을 온몸으로 물려받았다. 꿀벌이 그려진 ‘콜롬보 코르나스 레 뤼세’는 그녀만큼 우아하면서 꾸밈없다.
영국의 두 남자
280년 역사의 이탈리아 접시
마시러 가요 –청담동 SMT
오늘밤은 청담동 SMT로 간다.



SMT의 크고 무거운 문을 힘껏 밀면서 들어갈 때,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부가적으로 차린 식당이라는 의심도 힘껏 밀어버리는 게 좋다. 청담동에 새로 문을 연 SMT는 공간과 메뉴판 모두가 빈틈없이 알찬 바bar이자 레스토랑이니까. 이곳에선 계란찜, 녹두빈대떡, 양념갈비 등 이것저것 뒤섞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한식’을 작은 그릇에 조금씩 낸다. 특히 술은, 바텐더가 직접 섞는 소맥, SMT 이름으로 양조한 막걸리, 위스키 45종, 팔도소주 6종, 전통주 11종까지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게 종류별로 구비했다. 뻥 뚫린 천장과 어둑한 조명이 분위기를 맞추니 술 맛은 더 살아나고, 가끔씩 들리는 SM 소속가수의 노래도 어깨춤을 추기도 좋다. 1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2층 한 쪽에 있는 바로 옮겨 바텐더에게 칵테일을 요청한다면 이 공간의 묘미를 한껏 더 즐길 수 있다. 02-6240-9300
게으른 이들을 위한 호텔 패키지
건강도 배달이 되나요?
주스보다는 즙이라면 좀 더 힘이 솟는다. 초코바보다는 곡류가 듬뿍 든 에너지바가 든든하다. 그래도 아쉬우면 견과를 씹는다. 배드 파머스는 그렇게 식탁 밖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간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과 음료를 만든다. 호박즙은 이름이 호박즙이고, 석류즙은 이름이 석류즙이다. 견과와 에너지바 봉투엔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재료가 촘촘하게 쓰여 있다.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슬로건처럼, 지금 뭘 먹고 있는지 곧장 알 수 있으니 더욱 안심하게 된다. 정기적으로 택배로 받아볼 수도 있다. badfarmers.com